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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마음쓰기

April 6, 2019

 

 

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4월 첫주라서 따스한 봄을 기대했지만 매서운 꽃샘추위 타고 온 현실은 칼바람 처럼 우리 마음을 파고드는 한 주를 보냅니다. 작은 불씨가 건조한 산에 강풍을 타면 삽시간에 아비규환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목격한 한 주였습니다. 이름도 애매한 제주도 "4.3사건"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저는 1975년에 미국으로 간 후 나름 한국 근대역사에 관심을 갖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4.3사건은 2년 전 한국에 온 후 알게 된 역사입니다. 1948년 여수-순천은 손양원 목사님과 애양원 그리고 손 목사님과 두 아드님의 순교에 대하여 읽으면서 알게 되었고 십 수년전에 직접 방문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47년 4월3 일은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는 몰랐던 역사입니다. 그리고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마음이 아픕니다. 어째서 일까요?

 

2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제국으로 부터는 광복이었지만 우리 한국은 공산주의 소련의 침략을 바로 받습니다. 우리 민족이 투표를 해서 38선 북쪽의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주인"이 바뀐 힘 없는 "노예"와 같은 민족이 그 당시 우리였습니다.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두 동강 내고 유엔은 무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나라를 회복하는 큰 과제가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의 위협을 대응하기 위하여 한 때는 적이었던 제국주의 일본의 잔재들을 남한의 리더들로 세우는 단순한(?) 대답을 선택합니다. 광복 75주년을 앞두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친일세력의 기고만장을 보면서 쓰라린 마음을 두드려봅니다.

 

저는 정치적으로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닙니다. 제가 있고 싶은 곳은 좌우가 아니라 위가 아닌 낮은 곳 입니다. 그릇된 기득권에 저항하며 갑질행세에 신음하는 사람들 곁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제 관심은 늘 양지바른 곳이 아니라 그늘진 곳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니라 외부 강대국의 대리 결정에 분단된 민족이 1945-1950년의 과도기를 지내고 6.25동란을 치르게 됩니다. 1947년 4.3사건에 대하여는 아직도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1947년 3월1일에 경찰이 타고 있던 말에 어린 아이가 치여 죽은 것이 불씨로 시작된 대형 "산불"은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 후 나아지지 않은 (오히려 더 악화된) 제주 도민의 분노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형 산불은 총탄으로 진압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1947년 제주도민 25,000은 공산주의를 원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론 공산주의자들도 섞여 있었겠지요. 북한에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듯이 남한에도 공산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역사를 바로 알아 미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나라가 약한 나라였나 반성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미움이 아니라 화해와 사랑의 마음으로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고 더 밝은 미래를 우리 자녀들에게 건네주고 싶은 마음이 이번 주 제 마음입니다.

 

해운대 산불 소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강풍으로 겹친 속초 대형 산불은 인명피해와 아울러 큰 재난을 불러온 한 주였습니다. 산불이 진화되고 우리 민족에게 아무쪼록 빠른 회복의 길이 열리기를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이승한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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