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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입니까?

August 24, 2017

 

로마서 12장 14-21

 

들어가는 말: 제자입니까?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하는 질문이 있다.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손가락을 들어서 물어봐야한다. "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맞아?"

 

마이클 호튼이 쓴 책, "Made in America"에 보면 미국의 소비자성 (consumerism)이 교회에도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 100% 동의한다. 호튼의 말을 그대로 빌려보면, "In consumer religion, Christianity becomes trivialized. Its great mysteries become cheap slogans. Its majestic hymns are traded in for shallow jingles... And its parishioners, now unashamedly called audiences, have come to expect dazzling testimonies, happy anecdotes, and fail-proof schemes for successful living that will satiate spiritual consumption."

 

우리는 제자인가? 아니면 소비자인가? 여러분은 교회에서 자주 삐치는가? 여러분 맘에 안든다고 성화되지 않은 언어로서 비판하고 헐뜯고 물어뜯고 있지는 않는가? 자신이 소비자인지 아니면 제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제자입니까?

제자의 열매 #1: 무조건적 사랑 (Unconditional love)

14절,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소비자는 "나를 축복하는 자가 내 맘에 안들면 핍박할거야. 저주할거야. (침 뱉을 거야...)"라고 말한다. 제자에게 주시는 말씀은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이다.

사도 바울이 너무한다고? 마태복음 5장 43-48절을 보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이 보여주는 복음은? 조건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얼마나 우리 인간의 사랑과 대조적인가?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할 때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하고 박수친다.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다던지 우리 마음에 안 들 때에는 가차없이 헐뜯는다. 사실이건 유언비어이건 상관없이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한다.

 

우리의 원하는 조건에 못 미치는 사람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갖고 있는가?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이런 자세를 갖기를 기도한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순교자 스데반을 기억하자.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 7:59&60)

 

나에게 지금 누가 돌을 던지고 있는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가? 사랑을 주었으나 오히려 증오로 돌려 받았는가? 기억하자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기독교 소비자는 이런 사랑 꿈도 못 꾼다. 하지만 제자는 해야한다. 할 수 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장 43-48절)

 

 

제자의 열매 #2: 공감하는 사랑 (15 &16절)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한 마음으로 함께 더불어 가려면 무엇 보다도 즐거울 때 같이 즐거워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하는 것이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15절과 16절을 같이 가야한다. 동병상련의 마음을 품고 같이 해야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를 아파하는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일까? 우리는 누군가가 잘 되면 진심어린 박수를 치기 보다는 꼬투리를 잡으려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본다. 뉴스나 신문에서도 근거 없는 이야기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유명 연예인들도 그 상처를 견디지 못하고 이 세상과 이별을 하는 경우도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린 언제부터인가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기독교 소비자는 그래도 될 지 모르겠으나 제자는 그래선 안된다.

 

제자는 약한 자들과 함께 하고 또 강한 자들과도 함께 할 줄 알아야 한다. 약한 것이나 강한 것이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약한 사람이 그리고 강한 사람이 우리가 그들과 함께 하는 이유이다.

 

우리 하나님은 성도의 눈물을 귀히 여기시는 분이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편 56:8)"

내 이웃의 눈물을 담는 병이 되자. 같이 울자. 그리고 내 이웃이 잘 될 때 진심을 담은 축하를 해 주고 축복을 빌어주자. 때로는 쉽지 않겠지만 소비자가 아니라 제자라면 할 수 있다. 해야한다.

 

 

제자의 열매 #3: 넘치는 사랑 (20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여기에 숯불은 진노의 불이 아니라 축복의 불을 뜻한다. 요즘은 불은 성냥, 라이터 등등 쉽게 생각하지만 1세기 전 옛날에는 숯불을 쌓아 두는 것은 축복의 상징이다. 목마른 것과 같은 맥락으로 원수를 축복하라는 말씀이 20절이다.

 

제자의 열매는 원수를 용납하는 정도의 passive한 사랑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내 원수가 내 사랑인 것 처럼 차고 넘치는 그런 aggressive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범벅이 된 십자가를 부등켜 안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힘들다. 하지만 소비자가 아니라 제자라면 할 수 있다.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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