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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할거에요."
내가 생각해도 나는 나쁜 B형이다. 해도 되는데 한번 내 마음이 삐뚤어지면 그거 바로잡는데 시간이 걸린다.


제직회 참석률이 너무 저조함에 목사님이 동기부여를 잘 설명하시면 좋겠다는 조언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싫다. 신학자 백지영이 부른 노래 가사처럼 "싫다." "네가 없는 나" 싫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공적 모임에는 "오세요. 제발 오세요. 그리고 제발 끝까지 계세요."라고 간청하기 싫다. 나는 나쁜 B형이자 못난 B형이라서 정말 "영양가" 없는 노회 모임에도 폐회예배까지 자리를 뜨질 않는다. 노회는 장로교 목사인 나에게 "교회"이니 내가 교회를 위해서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은 "내 영양가"를 찾기 전에 내가 어떻게 보탬이 되는 노회원이 되는가의 질문에 공회의는 참석해서 끝까지 내 자리를 지키는 예의라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노회에 하루 종일 참석하면 허리도 아프고, 몸도 붓는가 하면 (혈액순환이 안 되어), 어떤 때에는 마음도 아프다. 하지만 이 못된 B형이 할 수 있는 것은 내 자리에서 지킴으로 노회임원들도 격려하는 것이다. 공회의 실제적 "회장"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 이 못난 B형이 할 수 있는 것은 루터의 고백처럼 "주여, 내가 여기 서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할 능력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복음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몸.
어떤 이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가 필요 없다고 믿는 듯 무교회적 신앙생활을 말한다. 지상 교회와 지역 교회의 부족한 모습만 들먹이며 "교회 평론가"가 된 것처럼 그러지 않아도 힘든 세상에서 교회마저 피멍들게 한다. 교회에서 우리가 서로를 포용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가? 포용(包容)은 감싸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란다. 공존은 그냥 같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포용은 서로를 감싸주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우리 주님이 하신 일이 포용이다. 공존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제자라고 자칭하는 사람이라면 교회의 크고작은 일들에 내 "영양가"를 따지는 사고 구조는 불일치하다. 

 

성도님들께,

이번 제직회에 오시면 허리도 아프실 수 있고 혈액순환에 도움도 안 될 것을 약속합니다. 뭐든지 "빨리 빨리" 하는 기계적-기능성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교회에서의 회의는 지루합니다. 내 관심 밖의 일들로 긴 연설을 듣는 것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 MC들은 짧고 재미있고 명확하게 말을 잘 합니다. 그러나 제직회 의장은 “국민 MC”처럼 재미있게 모임을 이끌지 않을 것입니다. 무자비한 "광고주"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主)를 섬겨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미리 말씀 드립니다. 제직회나 공동의회에서 여러분들이 "얻을 것"은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당회나 실행위원회를 포함한 회의가 참 많습니다. 만일 소비자의 마인드로 회의에 참석하면 아마 회의(會:모을 회 議:의논할 의)가 회의(會:모을 회 意:뜻 의)보다는 회의(懷: 품을 회疑:의심할 의)에 머물겠지만 제자의 마인드로 참석하면 會意의 主를 위하여 懷意할 것이 분명함에 하나님 나라의 회의(回義)가 나타나는 회의가 될 것도 함께 약속합니다.

 

복음의 회자(膾炙)를 위하여 오늘도 노력하는 종 감히 몇 자 올렸습니다.
 

저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이승한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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