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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사십니까?"

제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부르던 노래 중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이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주일입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의 자유도 잠깐, 한민족은 명분 없는 분단을 경험해야 했고, 그로부터 5년 후, 남침으로 시작된 3년의 전쟁은 휴전으로 일단락을 짓습니다. 종전이 아닌 휴전이었기에 60년도까지도 불안과 긴장을 어린이들도 배우는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처럼 열심히 살았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경제적 부상으로만 이해하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남한의 우리는 어쩌면 이미 "그날"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12장에서 찾습니다. 화평에 대하여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있는 오해를 풀기에 좋은 구절입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에서는 "[예수]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기록되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굳이 "분쟁케 하려" 말씀하실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시는 화평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을 말합니다. 창조주를 원수로 대적하던 피조물을 용서하시고자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예수에게 다 부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는 화평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람 사이에는 불화가 일어납니다.

 

"용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과 우리가 화평을 얻는다는 것에는 (1)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2)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간구하는 죄인의 회개를 뜻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투지 않는 것을 "화평"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타협이지 진정한 화평이 아닙니다. 잘 못하는 사람을 달래주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타협하시는 것도 아니오 달래시는 것도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뉘우침과 회개가 없는 화평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6.25입니다.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은 하나님과 화평을 먼저 이루어 공동체 안에서의 화평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공동체와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제 자신에게 반문하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이승한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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