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9, 2019

October 18, 2019

October 11, 2019

September 7, 2019

Please reload

Recent Posts

본질에 충실하며 꾸는 꿈

June 2, 2017

1/4
Please reload

Featured Posts

죄, 죄인, 그리고 구세주

February 12, 2017

 

이번 주로 2017년 들어서 시작한 예배 시리즈 일곱번째 말씀을 전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24/7 예배자입니다. 예배를 드려서 우리가 예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라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예배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교회가 예배에 실패하면 세상은 당연히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배워야 하고 예배자의 정체성을 배워야 합니다. 출애굽기 32장에 언급된 금송아지 사건을 다루면서 우리도 그릇된 생각으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우리의 신”을 우리가 만들고 있지않나 자문하며 점검하는 시간으로 2017년을 시작했습니다. 간절한 바램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음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로 거듭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하며 오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질문합니다. “어떻게 나아만은 나병인에서 예배자로 거듭났을까요?”

 

첫 째, 죄가 무엇인지 성경을 설명합니다.

성경은 여러가지 형태로 죄를 설명합니다. 죄를 법을 어기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죄를 진실의 반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을 거짓의 아비로 죄를 거짓으로 설명합니다. 죄를 정결하지 못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공동체에게는 정결하지 않은 자들은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규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죄를 질병으로 설명을 합니다. 병자가 죄인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질병과 사망은 죄로 말미암은 것임에 질병을 살펴보면 죄의 정체성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죄를 나병, 혹은 한센병 아니면 문둥병으로 설명을 합니다.

요즘은 한센병자를 마주치는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자란 60년도에 우리 동네에는 문둥병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에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둥병, 한센병 혹은 나병으로 불리우는 병은 어떤 병입니까? 사전에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병(癩病, leprosy 레프러) 또는 한센병(Hansen's disease; HD)은 미코박테리아의 일종인 나균(Mycobacterium leprae)과 나종균(Mycobacterium lepromatosis)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감염병이다. 처음 감염되었을 때는 아무 증상이 없고, 이 잠복기는 짧으면 5년, 길면 20년 가량 지속된다. 증상이 발현하면 신경계, 기도, 피부, 눈에 육아종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통각 능력을 상실하고, 그 결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체 말단의 부상 또는 감염이 반복되어 썩어 문드러지거나 떨어져 나가서 해당 부위를 상실하게 된다. 체력의 약화와 시력의 악화 또한 나타난다. 나병은 인간 간 접촉으로 감염된다.” (위키백과)

한센병이 죄를 어떻게 설명하나요? 한센병처럼 죄는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게 작게 시작합니다.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정체를 들어내서 결국 삶의 모든 것을 삼킵니다. 나병처럼 우리 삶에 잠복해 들어와서 감염된 것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신경을 죽여서 우리 몸이 썩어 문드러져서 떨어져 나가도 통증이 없습니다. 죄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서도 죄책감을 못 느끼게 만듭니다. 바로 이것이 죄입니다.

 

둘 째, 죄인의 노력은 헛된 것임을 설명합니다.

나아만은 어떤 사람입니까? 1절을 보십니다.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 그리고 “큰 용사”라고 표현합니다. 아람은 어떤 나라입니까? 요즘 내전과 난민으로 시끌벅적한 나라 시리아의 모체입니다. 다마스커스가 수도였습니다. 노아의 아들 중 셈의 후예였지만 이스라엘과 계속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던 이스라엘에게는 엄청 골치 아픈 원수의 나라가 아람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장군이 나아만 입니다. 그런데 그는 많은 업적이 있었지만 성경은 그를 “저는 큰 용사나... 나병환자였더라”로 정의를 내립니다.

문둥병이 죄를 설명한다면 이렇게 나아만은 죄인을 설명합니다. 5절 이하 말씀을 보십니다.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여기서 한 달란트(34kg)는 남자가 20년 일하는 봉급입니다. 십 달란트면 200년 일하면 모을 수 있는 액수입니다. 어느 주석에서는 나아만이 가지고 간 물품의 가치가 약 몇 천억이 된다고 합니다. 무엇을 뜻합니까? 나아만은 병고침을 받을 자격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병고침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아만 처럼 용서하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나아만이 병고침을 얻기 위해서 아람 왕의 추천서를 가져갑니다. 자신의 스펙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재물을 가지고 가는데 천문학적 숫자의 재물을 가지고 갑니다. 여기서 나아만의 문제는 어쩌면 나병이 아닙니다. 나아만의 가장 위험한 생각은 나아만이 “나는 병고침을 받을 자격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람왕의 추천서도 억이 되는 재산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받지 않습니다. 받지 않는다는 것은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9절과 10절을 보십니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엘리사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사환을 보냅니다. 문자를 보냅니다. “어... 수고했고... 저기 보이는 요단 강에가서 목욕하고 가... 아... 일곱 번.” 이라고. 사실 요단강이나 한강이나 뭐 매한가지 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명령이 요구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아무리 그것이 어리석게 보여도.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존경과 순종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나아만의 반응이 죄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은 “답”을 이미 다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각으로 “나병”이 대단하니 뭔가 대단한 종교적 차례가 필요할 것이라고 추측한 것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우리에게 큰 문제처럼 보이는 것들이 하나님에게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죄인들은 자신들의 시각으로 하나님을 보려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즉 예배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시각으로 자신의 문제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한 “문제”가 커보입니까? 눈을 하나님께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답입니다.

 

셋 째, 은혜로 우리는 죄인에서 예배자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은혜가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어린 소녀를 통해서 노출됩니다. 2절-3절 말씀,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이 어린 소녀는 어떤 상황입니까? 노예로 끌려온 상황이었습니다. 그것도 아람 군대가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사로잡아온 소녀입니다. 아마도 소녀는 살려 잡아왔지만 이 소녀의 가족과 마을의 남자들은 다 죽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소녀는 원수 중에 두목의 집에서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소녀에게 소식이 들립니다. “나아만은 나병환자이다.” 이 때 소녀가 어떻게 원수를 대합니까? 은혜로 대합니다.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이 어린 소녀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원수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인공은 나아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도 아니요 하다못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도 아닙니다. 오늘 가장 예수 그리스도를 잘 보여주는 사람은 어린 소녀입니다. 어린 소녀가 자신의 부모를 죽인 그리고 자신을 노예 삼은 아람군대 장관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 것에 대하여 원수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아마 적어도 외면 하였을터인데 그렇지 않고 살길을 제시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어린 소녀는 타의로 말미암아 고향을 떠나 외지로 끌려와서 종이 되었지만 우리 예수는 자의로 아버지의 집과 떠나시고 영광을 버리시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가)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죄인에서 예배자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어떻게 나아만은 나병인에서 예배자로 거듭났을까요?” 오직 은혜로만 입니다.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Please reload

Follow Us
Please reload

Search By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