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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장에는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택정하심은 주제의 성격에 따라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함께 설명을 하게된다. 그리고 늘 혼란스럽다. 그래서 기도한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결론을 먼저 말하자. 하나님도 주권이 있으시고 우리도 주권이 있다. 하나님도 자유의지가 있으시고 인간도 자유의지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다. 동등한 위치가 아니다. 성경에서 복음은 하나님의 주권이 죄인의 주권을 꺾으시는 것이라고 하며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긍휼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이 죄인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 만큼 끔직한 형벌이 없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두 가지 시각으로 고민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에게서 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게서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 시도 해볼까?

 

1.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선하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시고 불의적인 행동을 하시지 않는다. 죄를 지으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1명을 구하시든지 아니면 온 인류를 한명도 제외하지 않고 구하시든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선하시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범죄하는 인류를 다 버리지 아니하시고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신다. 긍휼이다. 긍휼은 그 자체가 의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는 질문하는 “하나님은 왜 온 인류를 구원하시지 않는가?”는 그릇된 (죄송하지만) 교만한 질문이다.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대적한 역적죄인으로서 감히 창조주에게 질문을 한다면 그것은 “어찌하여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육신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그 모진 고통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독생자 예수에게 퍼 부으시는가?”이다.

 

2. 인간은 죄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다. 하나님이 첫 아담으로 인류를 대표하게 하셨고 (Federal Headship)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하나님을 대적했다. 성경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었고 또한 죄의 노예가 되었다고 한다. 즉 우리의 자유의지는 우리가 누구를 섬기는가에 늘 따르게 되어있다. 인간은 피조물이기에 물고기는 물 안에서 자유하고 새는 공중에서 자유하다. 맘대로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창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참된 자유인데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창조주의 “종”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었다. 그래서 죄인은 절대로 자유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 절대로 자유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죄인은 절대로 자유의지적으로 회개하지 않는다. 죄인의 영혼은 하나님께 대하여 죽은 자들이다. 인간의 자유의지에게만 하나님이 두신다면 단 한명도 구원을 받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가 아는 “구원”이란 어떻게 성립이 되는가?

 

1. 인간은 죄인이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또 구원을 받고자 하나님을 자유의지적으로 찾지 않는다.

2. 하나님은 선하시다. 사랑이시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신다.

3. 인간은 인간이 대표해야 한다. 그래서 두번째 아담이 필요하다. 문제는 인류 가운데서는 다 첫 아담으로 말미암은 죄중에 태어난다. 그래서 하나님은 직접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다.

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한 형상으로서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대표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셔서 율법 아래서 사시고 율법을 완성 하시며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진노를 다 담당하셔서 죽으신다.

5.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구원을 하신다.

6. 죄값을 십자가에서 치루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신다.

7.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하실 법적, 윤리 도덕적 명분이 생기신다.

8.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들 가운데에서 긍휼 받을 자들을 부르신다. 아브람을, 이삭을, 야곱을, 요셉을, 모세를, 다윗을, 베드로를, 사울을 그리고 여러분과 저를.

9.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지 않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선하시다.

10. 하나님의 자유의지(선하심)가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죄의 노예로 있을 때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 우리에게 벌어진 것이다.

11. 마태복음 20장 15절 말씀을 나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세상에 비극이 일어나면 죄인들은 묻는다. “신은 어디 계시는가?” 그리고 죄인들은 생각한다. “만일 신이 존재하는데 비극을 막을 능력이 없다면 그 신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그래서 죄인들은 신을 거부할 명분을 찾는다. “아니. 만일 신이 존재하고 비극을 막을 능력도 있는데 그 비극을 막을 의지가 없다면 그 신은 선하지 않다.” 그 또한 죄인들이 신을 부인할 명분이된다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복음은 십자가의 예수를 소개한다. 그리고 말한다. “신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분은 선하시다.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은 선하시다. 왜냐면 그분은 좋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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