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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

February 5, 2017

 

들어가는 말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입니다. 교회의 본질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교회가 교회 같으려면 본질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고 있어야 정말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본질을 잃으면 다 잃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본질적인 것들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된다면 문제는 심각한 것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하여 수년전에 손봉호 교수는 "한국 교회는 죽어가고 있다”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경각심을 알렸습니다. 저도 오늘 이러한 긴장감을 갖고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한국 교회는...

(1) 종교화 된 모습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한국 사람들의 유교사상이 큰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에게는 종교가 편합니다. 문화적 보수주의 영성이 너무도 익숙합니다.

(2) 토속화 된 모습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영성에 깔려있는 (그래서 우리 자신도 모르는) 샤머니즘의 역할이 큽니다. 우리는 체험적 신비주의 영성에 너무도 쉽게 끌려갑니다.

(3) 소비자화된 모습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 힘, 파워를 소유하기 원하고 과시하기 원합니다. 제자가 아닌 소비자 영성이 우리에게는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종교가 아닙니다. 미신도 아닙니다. 소비자성 물품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교회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믿음과 말씀의 공동체로서 예수의 신부이며, 예수의 몸이자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본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은?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어떤 모습일까요?

 

(1) 성장이 아니라 성화에 관심을 두는 교회입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로 본 교회의 본질"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여기 “경건”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religion”으로 번역이 됩니다. 외형적 종교를 말합니다. 26절에 헛된 경건이나 헛된 종교와 대조해서 옳바른 신앙의 모습을 27절에서 다루는 것입니다.

  • 마치 가인과 아벨이 예배를 드렸으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아벨의 제사이었던 것처럼 외형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으나 헛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과 제대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교회에는 공존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성경이 중요시 여기는 핵심가치는 성장이 아니라 성화(聖化)라는 것입니다. 성장에 큰 비중과 가치를 두는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외국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은 “빨리빨리”라고 하는데 이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성장(growth)과 가치(worth)는 다른 것입니다. 성장 자체에 가치를 두면 인간의 존엄성을 잃습니다. 성장없는 성화는 가치가 있지만 성화없는 성장은 무의미합니다.

  • 강남의 기적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오해하는 한 한국교회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 교회의 가치를 벽 면적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 모이는 성도들의 깊이로 이해해야합니다.

  • 교회의 가치는 일요일에 얼마나 많이 모이는 가에 있지 않고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십자가를 증거하는가에 있습니다.

  • 세상이 교회에게 바라는 것은 적어도 교회는 거룩한 삶을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입니다.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거룩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도 거룩함 즉 경건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 교회의 핵심가치라고 생각합니다.

(2) 성공이 아니라 섬김에 관심을 두는 교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는 26절에 “헛된 경건”을 언급하고 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말합니다.

  •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새벽기도 열심히 나오고 담임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고 헌금 많이하고 공모임에 참석하는 착한 성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열심히 나오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는 겸허함과 재물에 대한 선한 청지기의 모습과 공동체에 대한 열심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 (예화 1: 어느 유명한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과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은 매주말 마다 집회를 다니시느라 상당히 바쁘셨습니다. 그분의 간증은 그가 어떻게 예수를 잘 믿어서 성공했는가 였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새벽기도 빠지지 않고 성경 열심히 읽고 기도 열심히 했더니 성공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새벽기도+성경+기도=성공”의 삶을 살아라” 였습니다. 사실 그의 간증을 잘 들어보면 그가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성공”입니다. 그는 성공의 신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예수는 성공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에 지나질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이분은 예수를 사랑합니까 아니면 예수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믿고 병에서 낫지 않아도 예수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예수 믿고 얻는 혜택이 하나도 없다 해도 예수를 믿고 따르시겠습니까?)

  • 한국교회가 필요한 것은 예수 믿고 성공한 간증이 아니라 세상은 “실패”했다고 비웃어도 묵묵히 섬길 줄 아는 사람들의 간증입니다.

  • 1세기에 “고아와 과부”는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었습니다. 전혀 성공을 할 기반이나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말하자면 “고아와 과부”일 것 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그 환난중에 돌보라 말씀하십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은 교회가 할 수도 있고 안해도 되는 옵션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 어째서입니까? 고아와 과부가 불쌍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고아와 과부는 예수 없는 모든 사람들의 정체성입니다. 고아와 과부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동력의 대상입니다. 그들이 없는 것을 우리가 갖고 있고 우리가 없는 것을 그들이 갖고 있습니다. 교회은 본질은 “고와와 과부” 즉 사회에서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과 함께 동력하는 것입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3) 소비가 아니라 사랑에 관심을 두는 교회입니다.

기독교 소비자는 예수를 믿는 것에 유익한 것에 관심을 두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예수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둡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 여기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동기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이 세상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노력과 열심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찬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아닌 십자가에 이뤄진 구원의 보혈로 세속에 물들지 않습니다

  • 팀 켈러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The Religious find God useful but the Christians find God beautiful.”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참 유익한 존재로 보지만 크리스찬은 하나님을 참 아름다운 존재로 본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예수 믿고 복받고 예수 믿고 천국 가려고 믿으십니까? 복 받는데 그리고 천국 가는데 유익한 존재가 예수입니까? 예수를 삶의 유익한 '도구'로 보면 여러분은 소비자이지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는 결코 우리 삶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아름답습니다. 제자는 예수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가 아름다움에 그분의 아름다움에 도취될 때 우리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물질만능주의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용”하는데 익숙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용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의 차이점을 모릅니다. 오늘 날 교회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예수의 이름으로 직장도 얻고 예수의 이름으로 힘과 능력을 구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를 사용하는 것이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그들의 삶의 만족을 얻기 위한 수단과 방법일 뿐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를 사랑하십시오. 기독교 종교의 소비자가 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십시오.

나가는 말

성장이 아닌 성화. 성공이 아닌 섬김. 그리고 소비가 아닌 제자로서의 사랑이 강조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서 오래전에 보았습니다. 광복절에 특사로 출옥한 어떤 분이 성경을 한 손에 들었습니다. 공교롭게 그후에 감옥으로 가는 한 정치인도 한 손에 성경을 들었더군요. 저는 그분들의 개인의 신앙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이미지에 대한 언급으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우리 손에 성경을 든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누구의 손을 잡고있는가도 중요합니다. 한손으로 성경을 드셨다면 다른 손으로는 소외된 자들에게 펼치십시오. 이 세상은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의 섬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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