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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한 목사

2020년 1월 19일 마음쓰기


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나를 움직이는 것은 나의 사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결정은 결국 우리가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사랑하는가에 따릅니다. 사랑이 우리를 움직입니다. 사랑이 우리의 무게 즉 앵커(anchor)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데카르트에게 속았습니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를 읽어 본 적이 없어도 심지어 들어 본 적이 없어도 우리는 은연중에 그의 철학에 속았습니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의 철학에 속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주장한바 “당신이 생각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 (You are what you think)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으며 놀랍게도 크리스천들도 이 사상을 그대로 받아드렸습니다. 만일 우리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란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습득해 가는 “배우는 사람” 정도에 멈춘다면 그렇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의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고(고후 10:5), 지성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고(롬 12:2) 말씀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분명히 말씀을 배우는 사람이자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리고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네가 무엇을 아느냐?”라고 묻지 않으십니다. 베드로에게 질문하시듯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무엇을 사랑하느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가르쳤지만, 사실은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 안에서 존재합니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더 정확합니다. 여러분이 누구인가는 여러분이 무엇을(누구를) 사랑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정보 창고가 아니라 사랑 창고입니다. 즉 제자의 삶은 아는 것과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열망하는 것과 갈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라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사랑과 갈망을 그분이 사랑하는 것과 갈망하는 것에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마치 제자도가 교훈에 관한 것처럼 살았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지식의 습득인 것처럼 접근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위해서 모이는 장소를 교회(敎會)라 불렀습니다. 배움과 예배를 혼동한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상을 흉내 내는 정도로 만족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결핍이 아니라 사랑의 결핍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사물이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물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사랑이 우리를 숨 쉬게 하고 있습니까? 끝없이 배우기만 하는 사람보다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합니다.

이승한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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