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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한 목사

8월 13일 마음 쓰기


“안 할거에요." 내가 생각해도 나는 나쁜 B형이다. 해도 되는데 한번 내 마음이 삐뚤어지면 그거 바로잡는데 시간이 걸린다.

제직회 참석률이 너무 저조함에 목사님이 동기부여를 잘 설명하시면 좋겠다는 조언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싫다. 신학자 백지영이 부른 노래 가사처럼 "싫다." "네가 없는 나" 싫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공적 모임에는 "오세요. 제발 오세요. 그리고 제발 끝까지 계세요."라고 간청하기 싫다. 나는 나쁜 B형이자 못난 B형이라서 정말 "영양가" 없는 노회 모임에도 폐회예배까지 자리를 뜨질 않는다. 노회는 장로교 목사인 나에게 "교회"이니 내가 교회를 위해서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은 "내 영양가"를 찾기 전에 내가 어떻게 보탬이 되는 노회원이 되는가의 질문에 공회의는 참석해서 끝까지 내 자리를 지키는 예의라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노회에 하루 종일 참석하면 허리도 아프고, 몸도 붓는가 하면 (혈액순환이 안 되어), 어떤 때에는 마음도 아프다. 하지만 이 못된 B형이 할 수 있는 것은 내 자리에서 지킴으로 노회임원들도 격려하는 것이다. 공회의 실제적 "회장"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 이 못난 B형이 할 수 있는 것은 루터의 고백처럼 "주여, 내가 여기 서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할 능력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복음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몸. 어떤 이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가 필요 없다고 믿는 듯 무교회적 신앙생활을 말한다. 지상 교회와 지역 교회의 부족한 모습만 들먹이며 "교회 평론가"가 된 것처럼 그러지 않아도 힘든 세상에서 교회마저 피멍들게 한다. 교회에서 우리가 서로를 포용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가? 포용(包容)은 감싸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란다. 공존은 그냥 같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포용은 서로를 감싸주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우리 주님이 하신 일이 포용이다. 공존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제자라고 자칭하는 사람이라면 교회의 크고작은 일들에 내 "영양가"를 따지는 사고 구조는 불일치하다.